2026년 노벨화학상은 프랑스의 헨리 카간(Henri B. Kagan) 교수와 일본의 켄소 소아이(Kenso Soai) 교수에게 돌아갔다. 두 연구자의 업적은 비대칭 유기합성이라는 하나의 분야에서 출발했지만, 그 의미는 기존의 촉매 설계를 넘어 “분자 수준에서 한쪽의 비대칭성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증폭되며, 스스로 유지될 수 있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화학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비대칭촉매 분야의 출발점에는 2001년 노벨화학상이 있다. 당시 윌리엄 놀스(William S. Knowles), 료지 노요리(Ryoji Noyori), 배리 샤플리스(K. Barry Sharpless)는 키랄 촉매를 이용해 원하는 한쪽의 거울상 이성질체를 선택적으로 합성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확립했다. 의약품과 천연물 등에서 특정한 입체구조를 선택적으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면, 이는 현대 유기합성화학과 의약화학의 발전에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카간 교수의 연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촉매의 광학순도와 생성물의 광학순도가 단순히 비례하지 않는 비선형 효과(non-linear effect)에 주목했다. 즉, 촉매를 구성하는 키랄 단위들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촉매의 실제 구조와 반응성이 달라질 수 있으며, 그 결과 작은 키랄성의 차이가 생성물에서는 훨씬 크게 나타날 수 있음을 이론적·실험적으로 규명했다. 이는 단순히 “좋은 비대칭촉매를 만드는 방법”을 넘어, 촉매의 구조와 상호작용이 어떻게 비대칭성을 증폭/증감시키는가를 이해하는 새로운 기전을 제시했다.
소아이 교수의 업적은 더욱 독창적인 방향으로 발전했다. 일반적인 촉매반응에서는 촉매가 반응을 촉진하고 생성물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소아이 교수는 생성물 자체가 다시 촉매로 작용하는 비대칭 자기촉매(asymmetric autocatalysis)라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비대칭성에 불과했던 것이 생성물의 자기촉매 작용을 통해 다시 증폭되고, 그 결과 한쪽의 거울상 이성질체가 더욱 많이 생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증폭 현상은 단순한 합성기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자연계의 생명체는 거의 모든 아미노산과 당에서 한쪽의 키랄성을 선택적으로 사용한다. 그렇다면 생명이 탄생하기 이전의 화학적 환경에서 어떻게 이러한 분자 수준의 “한쪽성(homochirality)’”이 시작되었을까? 소아이 교수의 연구는 이러한 오랜 질문을 실험화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 수상은 또한 비대칭촉매 연구의 역사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2001년 노벨화학상이 최대 세 명이라는 제한 속에서 놀스, 노요리, 샤플리스에게 수여되면서 카간을 비롯한 여러 연구자의 기여가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는 평가와 논의도 있었다. 한편 소아이 교수는 자신의 이름을 딴 “소아이 반응”으로 대표되는 비대칭 자기촉매 연구를 개척하면서 오랫동안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어 왔다. 이번 수상은 이러한 연구들이 단순히 특정 반응이나 촉매의 개발을 넘어, 비대칭성이라는 화학의 근본적인 현상을 이해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한국의 유기화학과 의약화학 연구자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비대칭촉매, 새로운 유기반응, 천연물 및 의약품 합성, 촉매화학 등에서 상당한 연구 수준을 구축해 왔다. 특히 비대칭촉매는 신약개발과 직접 연결되는 분야인 만큼 많은 연구자들이 새로운 촉매와 합성법을 개발하며 국제적인 경쟁력을 쌓아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연구 규모와 인력 측면에서 중국의 급격한 성장에 직면하고 있다. 많은 분야에서 중국 연구자들의 숫자와 연구비, 논문 생산량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한국의 상대적 연구 기반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특히 젊은 연구자들이 새로운 연구 분야에 도전하기보다는 이미 검증된 주제와 단기적인 성과에 집중하게 된다면, 한국 화학계의 장기적인 경쟁력은 더욱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번 노벨상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촉매를 하나 더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새로운 화학적 개념을 만들어내는 촉매연구를 하고 있는가?
카간 과 소아이의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노벨상은 반드시 거대한 연구비나 대규모 연구팀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한 연구자가 수십 년 동안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을 붙들고, 기존의 설명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현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새로운 개념으로 발전시킨 결과가 오늘날의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화학계에 필요한 것은 연구결과의 양적 혹은 질적 확대만이 아니다. 한국 연구자들이 실패할 가능성이 있더라도 새로운 화학적 질문에 도전할 수 있고, 하나의 연구 주제를 장기간 발전시킬 수 있는 연구 환경을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노벨화학상은 비대칭촉매라는 특정 분야의 영광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기초과학에서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고, 그 현상을 설명할 새로운 개념을 만들며, 그 개념을 수십 년에 걸쳐 발전시키는 연구의 가치를 다시 일깨워준다.
한국 화학계가 세계적인 화학적 개념과 발견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연구성과와 결과에 매몰된 연구가 아니라, 아직 답을 찾지 못한 근본적인 질문을 오랫동안 추구할 수 있는 기초연구의 토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연구의 가치를 당장의 논문과 성과로만 평가해서는 새로운 과학적 개념이 탄생하기 어렵다. 2026년 노벨화학상이 한국화학계에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